90년대를 그려낸 스물 다섯 스물 하나
나는 90년대, 그러니까 내 어린 시절이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쉬는 시간만 되면 공을 들고 뛰어나가서 축구했고, 학교 마치면 '푸른 쉼터'라 불리는 체육공원까지 잽싸게 뛰어가 농구 골대를 맡았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 '떨어지기' 혹은 '밀어내기'라 부르는 점수 내기 게임을 해야 했고, 지면 짤 없이 다음 순서를 기약해야 했으니까. 더 어릴 때는 놀이터만 있어도 아주 재미있게 놀았고 그냥 흙만 있어도 선 긋고 놀고 그랬으니 심심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막말로 어릴 때 흙 먹고 그러고 놀았다는 게 절반은 거짓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백이진과 나희도 두 주인공을 필두로 90년대를 그려낸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도 물론 한몫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작은 소품들까지도 그대로 구현해 내서 보는 입장에서 반가운 마음이 들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것 같다. 만화방이나 다마고치, 삐삐와 휴대전화 등 소품의 구현 정도나 이야기가 전개될 때마다 변하는 시대적 배경들이, 당시 많이 어려서 뭘 모르긴 했어도 기억은 있는 그 시절을 떠올리기에 아주 적절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줄거리
나희도라는 주인공은 올림픽에서 세 번이나 정상을 차지한 전설적인 펜싱 선수였다. 그녀의 딸은 발레를 배우고 있었고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에게 주눅이 들어 대회를 불참, 발레를 포기하겠다고 가출해 외할머니댁에 갔다가 우연히 엄마의 일기를 꺼내 읽기 시작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펜싱하는 고등학생 나희도에게 꿈이자 롤모델인 고유림과 그들의 친구들인 지승완, 문지웅 그리고 남다른 사연으로 이들과 함께하는 백이진까지 다섯 명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각자 말하기 어려운 사연들이 있었지만 함께 있을 때는 유쾌한 내용들이 많이 나왔다.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는 드라마
특히 나희도와 고유림은 국가대표라는 무게와 개인사의 압박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겨내는데, 그들의 대사를 들어보면 공감이 가는 구절들이 참 많았다. "잊어야 다음이 쉬워져", "영원한 게 없으니까, 잃으면 뭐 아프고 힘들겠지. 그렇지만 가져봤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처럼 뭔가 인생 2회차에 접어든 것처럼 와닿는 말들도 많았고 뼈를 맞아 아픈 말들도 있었다. 이걸 성장 드라마라고 볼 수 있으려나. 펜싱으로, 또 인간적으로도 그들이 성장하는 장면을 보며 내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추억은 결론은 좀 씁쓸해도 그때를 떠올리는 과정은 참 행복한 것 같다.
캐릭터에게 이입되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전체적으로 백이진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IMF로 집이 망하고 흩어진 가족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를 보며, 고생하고 있는 우리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스무살 넘은 놈이 고딩들 데리고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어린 모습'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는 괴리감 큰 두 개의 역할이 공존해서 이들을 만나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받고 다시 사회로 뛰어드는 힘을 얻곤 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당연히 저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은 안되지..).
그래서 지금의 백이진이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했는데 이를 알 수 없었던 것은 좀 아쉬웠다. 그렇지만 나희도를 제외한 사람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드라마의 방향에 가장 적합해서, 그렇기에 이런 결말로 마무리 짓지 않았나 싶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나를 위로하고, 내게 힘을 주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물의 현재가 나오고, 나희도와 백이진이 결혼했다면 시청자들도 만족했겠지만 드라마 자체로는 지금까지 보여준 과거의 추억들이 묻혀 이도 저도 아닌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로맨스도 놓치지 않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물론 이 드라마의 본질인 로맨스도 앞서 말한 내용들을 다 녹이면서도 놓치지 않았는데, 초반에 누적된 묘한 감정들이 치닫는 중반부에서는 둘의 관계나 사랑에 관한 대사 하나하나가 인상 깊었다. 단연 드라마 최고의 명대사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사이는 무지개야"와 이를 받아치는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무지개는 필요 없어"는 나희도보다 백이진을 보며 신발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건 백이진이 그냥 선천적인 끼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 상당했다. 나는 이 장면을 저렇게 만들어 낸 남주혁 배우의 성장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시대상이 적절하게 반영된 학생의 모습을 가진 지승완과 마치 제2의 백이진 같았던 문지웅. 이 둘의 서사도 좋았다. 특히 'DJ 완승의 해적방송'은 당시 윈앰프로 라디오처럼 방송하던 학생들의 트렌드를 반영했고, 나 또한 잊고 있었는데 너무나 반가웠던, 가장 임팩트가 컸던 추억거리였다. 고유림을 좋아하는 문지웅은 "왜 이 드라마의 남자들은 다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연애에 있어서는 백이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니가 줄 수 있는 게 불행뿐이라고 해도 난 할래, 같이 하면 상관없어"라는 대사가 여자들 여럿 울렸을 것 같다.
티빙 추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솔직히 시작할 때는 관심도 없었는데 주위에서 안 보는 사람들이 없어서, 모르면 대화에 낄 수가 없어서 거의 억지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였는데, 드라마와 같은 시대 속에 있었고 이를 중점적으로 그려내서 그런지 많은 부분이 반가웠고, 많은 부분이 즐겁고 감동적이었다. 드라마는 호흡이 길어서 그런지 스릴러, 액션 이런 장르들은 못 따라가겠는데 반대로 이런 드라마들은 매회 즐겁게 볼 수 있어서 잘 챙겨보게 되는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고 함께 리뷰를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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